시터라는 신세계

신랑이 해외출장을 가면서 2주간 엄마가 올라와 계셨는데 출장이 1주일 연장되고 일이 몰려들기 시작하면서 추가된 출장비로 시터를 쓰기로 했다. 단기인 만큼 시급은 조금 높게, 일은 최소한으로 . 그래도 연락은 3명밖에 안 오더라.
추가된 출장비의 한계가 있는 관계로 매일매일은 어렵겠다 싶어 월수금에다 언니네가 하루종일 없는 일요일을 추가. 추석 이후 입주시터로 들어가신다는, 매우 단기에 적합한 분을 만나 일요일부터 시작했는데 와...
아무리 세뿅이가 낯가림이 없다지만 한시간만에 방에 들어갈 수 있을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는데 경력 7년의 베테랑+쌍둥이 전문+입주 전문+부지런이 미칠듯한 상승효과를 일으켜서 세뿅이도 나도 신세계를 맛보게 되었다.
난 보통 세뿅이를 재우고 일을 시작해서 새벽에 끝나는 편이라 아침엔 거의 좀비상태로 누워 있으면서 눈만 따라다니는데 시터님은 다르다. 역시 노동에 댓가를 지불하는 건 중요한 거다.
게다가 PT에 비싼 돈을 지불하면 운동과 식단관리에 더욱 힘써 다이어트 효과가 높은 것처럼 비싼 대가를 치르니 이 시간을 알차게 보내겠다는 의지로 불타서 폭풍같이 일을 하게 되는 순기능이 있다. 엄마가 와 계실 땐 엄청 쓰레기처럼 살아서 미안했는데..

다행인 건지 2달짜리 프로젝트가 생겨서 엄마가 일정부분 도와주더라도 또 단기로나마 조금 더 시터를 써야 하는 상황이 되었는데 어쩐지 반가운 마음이 크다. 난 이제 돌아가지 못할 거야...

곧 8개월

일로 바쁘거나 육아로 혼이 빠지거나 둘 중에 하나인 나날들이다.
무럭무럭 잘도 자라는 세뿅이는 개월수에 비해 조금 크고 발달도 조금 빠른듯.
뒤집는 데까지는 꽤 오래 걸렸는데 곧 앉고 기고 잡고 서고 울타리나 소파 끝을 따라 옆으로 걷는 것끼지 하고 있다. 요즘은 설 때도 자꾸 한손을 놓으려고 해서 항상 긴장중.
너무 빨랐던 아랫니가 난지 3개월만에 윗니도 보이기 시작했다.
밤에 통잠을 자긴 하지만 새벽잠 질이 그닥이라 두세시 쯤이면 몇번씩 깨곤 한다. 낮잠은 비교적 잘 자는 편이지만.

요 며칠은 분리불안이 생겼는지 내가 안 보이면 두리번두리번하다 울고불고 난리가 난다.
특히 밤에 재울 때. 난 들어가서 일을 하고 신랑이 재우는 게 보통인데 요즘은 눈 감을 때까지 옆에 있어줘야 한다. 꼭 내가 안을 필요는 없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지만.
시간이라는 게 참 대단하다. 내가 그렇게 잘 놀아주는 것도 아닌데 절대적으로 같이 보내는 시간이 길다는 이유로 이런 존재가 된다는 게.

반가움의 표시로 얼굴을 때리는데 아프기도 하고 좀 귀엽기도 하다. 점점 인간이 되는 느낌.

집을 지르다 기타

결혼한지 3년.
세뿅이가 학교에 들어가기 전엔 한군데 정착해서 내집을 가져야지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그건 그냥 막연한 미래일 뿐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언니네가 이사하면서 집을 사려고 했지만 매물이 없어서 포기하고 전세로 살다가 최근에 계약을 했는데 첫째가 집을 사니 우리도 사고 형부 동생네도 사고.. 첫째의 영향력은 대단한 것이었다.
웬만하면 신랑 출퇴근이 어려워도 언니를 따라 이사온 이동네에 사고 싶었는데 와.. 여긴 정말.. 지난 몇주동안 미친듯이 올라서 내 손을 떠난 느낌.
그래서 지역을 바꿔 봤더니 그 돈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왜 이렇게 싸게 느껴지는 것인지.
문제는 몇주 간격으로 이 동네와 똑같은 분위기가 그 동네에도 흘러서 사려고 하면 물건을 자꾸만 집어넣는 분위기. 5개 정도는 사겠다고 했는데 4군데는 매물이 몽땅 다시 들어가고 마지막 하나는 우선순위에 밀려서 제일 우선으로 고려했던 지역은 실패.
돌아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서 이러다가 이동네고 저동네고 아무것도 못 건지겠다 싶었는데 바로 옆 블럭이 생각보다 비싸지 않은 물건이 있길래 살짝 두드려 보았다니 의외로 낙찰.
와.. 집을 보지도 않고 계약금 넣는 사람이 있다더니 그게 내가 될 줄 누가 알았겠나. 하여 이틀후인 어제 집을 보고 도장을 꽝꽝 찍고 옴.
수리를 다 했다고는 하지만 집주인이 70대 가까운 할머니셔서 내심 걱정을 했는데 이게 웬걸... 정말 완벽한 인테리어를 보았다. 신랑은 얼른 들어가서 살고 싶다고 하는데 그래... 지금 사는 집이 훨씬 넓어도 여긴 처음 이사 와서 물건 넣기 전엔 엄마가 똥집이라고 할 정도였으니 이해는 간다.
우리가 이사온지 2달밖에 안 된 관계로 일단 전세를 주고 2년 후에 들어가게 되겠지만 어쩌다 보니 벌써 다음 집이 결정되고 말았네.

하우스푸어까진 아니지만 오랜만에 다시 (어마어마한) 빚쟁이가 되었으니 세뿅이가 돈 먹는 하마가 되기 전에 열심히 벌고 모아야겠다.
그러니 얼른 어린이집 자리 좀....

7월의 사고 기타

별로 드러내지 않는 편이지만 나는 12년차 (열혈) 피겨팬.
그래서 실시간으로 전해 들었던 데니스 텐의 사망소식이 더 끔찍했다.
08-09시즌 시니어 데뷔라 내가 한참 열심히 보기 시작한 때와 활동시기, 전성기가 딱 맞아 떨어지다 보니.
처음에는 다쳤다길래, 이번 시즌 어떻게 되나 걱정했는데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더라.
몇십분 단위로 속보가 뜨고 카자흐스탄 미디어에서 공식 사망뉴스가 뜨기 시작하는데 하-
말도 안돼- 하다가 신랑한테 전화가 온 순간 세뿅이를 안고 엉엉 울었다는 거.

그 주말에 카자흐스탄 대사관에서 추모자리를 야외에 꾸며 놨길래 꽃다발 들고 찾아가서 방명록도 남기고 왔다.
일요일인데도 대사관 직원이 나와서 방명록 쓰겠냐고 물어보고 2층으로 안내해 주는데 
장례식장에서 조문객 받는 상주 같아서 뒤따라 가는데 엄청 울컥하더라.

이게 다 무슨 소용이람. 차라리 그냥 은퇴하고 그 유명세로 다른 분야나 팠으면 섭섭하기만 했을 텐데.
아니 조금만 더 일찍 안무 받으러 캐나다 가지..
무슨 수도 한복판에서 백주대낮에 저 국민영웅을 못 알아보고 칼부림이 나게 만드냐.
우리나라로 치면 강남 한복판에서 박지성이 칼 맞은 거나 다름 없는 상황인데.
이런 말도 안 되는 치안을 가진 나라였던 건가, 데니스의 조국은? 싶어서 치를 떨다가,
그래도 그가 끔찍히 사랑한 나라였으니 다시는 그 나라에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어나지 않기를 빌었다가..
오랜만에 좋은 경기들 한번씩 돌려보다가, 뭐 그랬다.

사실 이 친구가 늘 잘하는 선수도 아니고 부상도 많고 자주 아프고 그래서 한 시즌에 좋은 경기를 보여줄 때가 많아야 한두 번 정도인데 그 잘할 때가 워낙 인상적이다 보니 늘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응원을 했더랬다. 전에 좋아하던 야구딘이랑 스타일이 비슷해서-연기자 타입, 눈에 불꽃이 이글이글. 이 소식 전해지고 야구딘이 울면서 찍은 영상이 인스타에 올라오기도. - 더 정이 가기도 했고. 
우리나라 사람들이야 뭐 의병장 후손이라서 이름 한 번쯤은 들어 봤겠지만 그게 아니라도 전세계 피겨계에 엄청난 충격일 만한 사건이었다. 세르게이 그린코프 요절 때는 아마 더했겠지만. 15살에 시니어 데뷔를 워낙 세게 해서 설레발 치는 해설들은 최연소 올림픽 챔피언 나오는 거 아냐? 할 정도였고, 올림픽에 무려 3번이나 나와서 활동기간만 11년. 무려 10시즌이다. 

안타까운 마음을 기억해 두려고 늦게나마 기록을 남긴다.




캐나다에서 열린 2013년 월드에서 1점 차이로 은메달을 딴 데니스. 
쇼트 프리 모두 경기내용이 아주 좋았고, 참고로 1점 차이로 금메달을 딴 건 캐나다의 패트릭 챈.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
순위 확정될 때까지 다 나오는 영상인데 해설이 캐나다라서 반응이 하하.. 
점수는 요즘처럼 인플레가 심하지도 않고 쿼드전쟁이 본격적이지 않을 때이니 감안하고 봐야 한다.

빙판에 키스한 순간이 선수생활 통틀어 3번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첫번째가 2009년 월드 프리-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2번. 시니어 데뷔 시즌.
두번째는 바로 이 경기-아티스트ost
세번째가 2015년 사대륙 프리-아마 카자흐스탄 전통음악. 유일한 메이저대회 우승.

2014 소치올림픽 프리 아가씨와 건달들도 굉장히 좋아하는데 올림픽 영상은 구하기가 어렵다.
2010 밴쿠버올림픽 쇼트 싱싱싱도 좋음. 이건 영상 찾으면 바로 나오고.

기대했다가 실망할지언정 그래도 기다리게 만들었던 순간들이었는데, 아쉽고 아쉽고 또 아쉽다.
직관한 2015년 사대륙 프리는 아직까지도 피겨팬 인생 최고의 날. 네 최고의 순간을 함께해서 영광이었다. 
이제 영상으로만 만날 수 있겠네.  

내가 망하는 이유 기타

내가 이렇게 한가롭게 블로그에 글이나 싸지를 때가 아니긴 하지만 어쩐지 써두고 싶어서 끄적여 둔다.

1. 지방선거가 끝나자마자 일이 미친듯이 몰려들기 시작해서 이사 때문에 엄마도 올라와 있겠다 겸사겸사 다 받아서 소화하는 중이다.
그런데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사실 정상적으로 소화할 수 있는 분량이 아닌데 꾸역꾸역 다 받는 내가 참 미련하다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절하지 못하고 다 해내고 있는 건 왜일까. 

-어쩐지 가치 있는 존재가 되는 거 같음. 일을 안 한다고 자존감이 떨어질 정도는 아니지만 일 할 때의 내가 더 좋다.
-쓸 데가 많음 : 오늘 건 장판값, 내일 건 페인트값.. 이러고 일한다. 
-그냥 돈이 좋음

2. 이 와중에 잠깐씩 세뿅이랑 놀아주기도 해야 한다. 200일을 맞은 세뿅이는 어쩐 일인지 요즘 잘 때 나만 찾고-다행히 밤잠만. 아빠도 괜찮지만 그 시간에 퇴근을 안 함.- 심지어 아빠를 무척 좋아하는 아이임에도 새벽에 깨면 나밖에 안 통함. 아마 늘 그랬기 때문인 것 같다. 보통 새벽에 일을 하니까 그 시간엔 항상 내가 돌봐 줬거든. 

3. 이 미친듯이 바쁜 와중에 친구도 만나야 된다. 오랜만에 귀국한 데다 앞으로 몇년은 더 나가 있을 거라서 언제 다시 볼지 기약이 없어서.

4. 그리고 이사한 집에 손볼 데가 너무 많아서 그것도 신경 써야 되는데

이 중 어느 하나도 포기하지 못하는 게 문제다.

일하는 건 참.. 밤을 새든 어떻게 하든 10년동안 마감을 한 번도 어긴 적은 없었고
와 내가 미쳤지 이걸 왜 다 받았을까 하면서도 하다 보면 다 해치우게 되어서 어떻게 되겠지 으아아아ㅏ아앙 하고 울면서 밤을 지새우게 되는 거다.

내가 이런 저런 일을 다 받아버렸다는 걸 신랑에게 고백하면서
"돈 벌어서 집 살 거야." 라고 했더니
"그 돈으로 집 살 수 있어?" 한다. 
어차피 안 되니 너무 무리하지 말라는 얘기인데 이상하게 쉽지가 않다.


그래, 내가 얼마를 번들 일해서 어느 세월에 서울에 집을 사나.
하지만 일단 버둥거려 본다는 건가.

적당히 포기하고 대충 하기가 쉽지 않구나.
그냥 이번 생은 피곤에 쩔어 살아야겠다.
피로는 돈으로 발라서 풀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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