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개월

이제는 개월수로 말하지 않게 된 어린이 세뿅이.
6개월 동안 폭풍성장을 거듭해 어엿한 유치원생 형아가 되었다.
여전히 애착인형인 여우를 매일 안고 등원하지만 700미터가 넘는 등원길을 걸어갈 수 있고 2번이나 등장하는 단지 내 2차선 도로에서는 이쪽저쪽 살핀 후에 안전하게 건널 수도 있다. 

새삼 느끼는 세뿅이의 특질...이라면 
1. 겁쟁이 
저 멀리에 차가 보여도 건너면 안 된다고 내 손을 붙드는데, 어제는 만두가게에서 뿜어대는 김을 보고 연기가 난다면서 가까이 가면 안 된다고 난리였다. 만두 사러 가는 데까지도 한참, 만두 찌는 동안에도 무섭다고 내 다리를 안았다가 내가 눈높이를 맞춰주니 목을 안으면서 "엄마도 고개 숙여요!" 하질 않나 소방관 아저씨가 와서 불을 꺼야 된다고 하고, 연기랑 김이랑 다른 거라고 했지만 일단 맹렬하게 김이 뿜어져 나오니 무서웠던 모양이다. 뚜껑을 열면 소리도 요란해서 귀까지 꼭 막고, 결국 그 김이 나는 길을 지나지 못해서 빙 돌아서 집에 돌아갔다. 
미용실도 무서워한다. 그래도 올해 들어서는 아빠 품에 안겨서 벌벌 떨지만 이리저리 피하려고 애쓰는 건 개선되었고 눈물이 그렁하지만 안 울거나 덜 울어서 모두가 한결 편해졌다. 며칠 전엔 조금 울고 나와서는 "세뿅이는 바보에요. 엉엉 울었어요." 하길래 울어도 도망치지 않고 끝까지 머리를 잘 잘랐으니까 용감한 거라고 칭찬해 줬다. 

2. 인정욕구
요즘 들어 "세뿅이 똘똘하지요?" 하고 확인하는 질문을 가끔 하는데 아무래도 칭찬이 꽤 힘이 되는 모양이다. 유치원에서도 자꾸 돌아다녀서 수업 분위기 흐려서 선생님이 힘들어 했다던데(그게 하필 내가 한참 바빠서 할머니가 와 계시고 난 세뿅이 깨어 있을 땐 스터디 카페로 도망가 버린 때. 식사습관이고 뭐고 다 흐트러졌었다) 칭찬요법을 썼더니 꽤 먹혔다고 하더라. 

3. 다정함
기본적으로 성격이 나를 안 닮은 듯. 천만다행이다. 뭘 먹을 때는 항상 집안에 있는 사람 모두를 챙긴다. 8개밖에 안 들어있는 하리보젤리를 먹어도 엄마 하나 아빠 하나 할머니 하나까지 챙기고 잠들기 전에 우유를 먹을 때도 안 먹으면 품고 있으라면서 꼭 하나씩 갖다준다. 
길을 가다 만나는 모든 것에 참견을 하고 온갖 동물한테 인사한다. 낯은 가리는 편이지만 그래도 마트나 반찬가게에서는 인사를 잘한다. 기준을 모르겠네? 
가끔 갑자기 사랑이 차오르는지 안아주고 뽀뽀하고 하트 날리고 사랑한다고 할 때가 있다. 어제 저녁에는 갑자기 행복하다고 해서 깜짝 놀랐는데, 과연 이 아이는 행복하다는 단어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는 걸까. 
어쨌거나 정서가 안정되어 있고 긍정적이라는 느낌은 확실히 들어서 만족스럽다.

4. 말을 어떻게 참았지
거의 매일 처음 듣는 단어를 말하고 이제는 존댓말도 꽤 일상적으로 구사해서 인간의 학습능력에 감탄하게 된다. 세뿅이가 말을 시작한 게 작년 12월인데 불과 6개월만에 이만한 발전이 가능하다니, 아무래도 그동안 말을 못한 게 아니었다는 게 점점 확증으로 굳어진다.
발음이 아직 부정확해서 나만 알아들을 수 있는 말도 많고 하고 싶은 표현이 한 번에 완성되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기다려 주고 세뿅이가 한 말을 그대로 되돌려주면 다시 학습이 되는 효과도 있는 것 같아서 나도 열심히 말하고 있다. 
아 그래? 그렇구나 하는 말을 많이 하다 보니 세뿅이도 그렇게 리액션이 굳어졌는데 이거 나중에 영혼 없다고 욕 먹는 거 아니겠지.

5. 아빠만큼 커질래
영유아검진 결과 키는 상위 15% 안쪽이던데 아빠처럼 크고싶은지 자주 그런 말을 한다.
얼굴은 나랑 똑 닮았는데 나도 외탁한 편이라 그쪽이면 키도 작지 않을 거 같고 키까지 아빠를 닮으면... 제발 190만 넘지 말아라


기타 육아의 고충..은 사실 별로 없다.
유치원을 다니게 되면서 낮잠을 안 자니까 밤수면시간이 그만큼 빨라져서 요즘은 9시~10시 사이에 쉽게 잠든다. 예전엔 안 자려고 애쓰다가 책을 읽어주면 들으면서 스르륵 눈을 감곤 했는데 요즘 졸리면 책 하나 다 읽고 "이제 잘래요" 하고 도로롱 굴러서 알아서 쌔근쌔근모드로 들어가니 이렇게 편할 수가 없다.
말이 어느 정도 되니까 짜증이 확 줄어서 귀여움이 맥스를 찍는데 지금이 세뿅이의 리즈시절이라는 생각이 강력히 든다. 이때 많이 놀아주고 할아버지 할머니 보여드리고 사진도 많이 찍어놔야지.

오랜만에 근황 기타

분당으로 이사온지 벌써 6개월.
언니네 집이 옆에 없다는 것 빼고는 큰 불편함 없이,,,가 아니라 훨씬 편리하게 살고 있다.
운동할 곳이나 병원을 골라갈 수 있고 스타벅스, 버거킹, KFC가 1분컷. 
집이 좁은 건 어쩔 수 없지만 전보다 훨씬 안락하고 안정된 분위기가 만들어져서 만족하는 중이다.

문제는 의지박약과 상반기면 으레 찾아오는 비수기, 코로나 때문에 운동 등록을 할 생각을 못했다는 것.
그러다가 옷을 사러 가서 그랬는지 급 운동을 다녀야겠다는 의지에 불타서 필라테스와 피트니스를 동시에 등록해 버렸다. 필라테스 스튜디오에 유산소 기구가 전혀 없어서 기구만 쓸 수 있는 곳이 필요했거든. 
하여 필라테스 100회+서비스 2회를 110만원에 결제하고 피트니스는 6개월+서비스 1개월을 29만원에 질러버렸다. 하루만에.
오랜만에 올라간 인바디 결과는 역시나 처참해서 결과지를 본 트레이너에게 '먹는 거 좋아하시나 봐요' '30분 이렇게 타면 안됩니다. 아침저녁으로 1시간씩 타줘야 해요' '필라테스 하기 전에 싸이클 타고 가세요' 등등의 거침 없는 조언을 듣고 말았다.
약 열흘이 경과한 현재, 필라테스는 컨디션이 안 좋을 땐 어느 수업을 들어야 하는지 어떤 강사가 취향인지 일단 파악하는 기간. 주3회는 꼬박꼬박 채워주려고 생각은 하는 중이다. 
싸이클 역시 주말 제외하고 매일매일 타고 있다. 기어를 3~5 사이로 맞추라는 조언이 있었지만 그렇게 하면 트레이너가 얘기하는 50rpm 이상으로 굴릴 수가 없기 때문에 일단 2단으로 맞추고 50rpm 이상을 유지. 트레드밀보다는 싸이클을 타고 입식보다는 좌식을 타는 게 관절에 좋다고 해서 착실히 이행하는 중. 3주차쯤 되면 고비가 올 거라고 하는데 당장 다음주라 긴장된다.

상반기 비수기를 맞아 뒹굴거리다가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분야별 이력 정리를 시작했다. 자잘한 거 빼고 하는데도 너무 많아서 리스트 만드는 데만 거의 일주일 소요. 10년동안 제대로 정리 안하고 뭐했냐고.
정리를 하는데 말도 안 되는 스케쥴이 속출하는 걸 보면서 헐 소리밖에 안 나오더라. 과거의 나에게 "아니, 지금 이거 큰 거 하는 거 있는데 이걸 또 받아? 아니 잠깐만 지금 큰 거 3개를 동시에 돌린다고? 미친 거야?" 하고 계속 꿍얼꿍얼. 그리고 깨달음을 얻었다. 이렇게 해야 돈이 되는 거구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중간에 큰 프로젝트가 끼어드는 바람에 완성까지 한 달이 걸렸지만 어쨌거나 정리는 끝. 자잘한 걸 쳐내다 보니 주력분야가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것처럼 보이는 이력서가 완성되었지만 이러나 저러나 모든 분야의 경력이 차고 넘쳤다고 한다... 마침 뷰티쪽이 많이 약하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정리 중에 끼어들어온 일이 뷰티분야 큰 건이라 고생은 했어도 훌륭한 경력이다! 잡았다! 하고 기쁜 마음으로 돈을 벌 수 있었다.

최근엔 재택근무를 5년째 하다 보니+일자리 넘치는 분당에 있다 보니 점점 출근을 하고 싶은 마음이 커져서 몇 군데 이력서를 넣어보기도 했는데 이 나이에 취직이 되겠나 싶어서 큰 기대는 안 하려고 노력중.
아직 진행중이기는 하지만 어제 화상면접은.. 면접관 얼굴이 안 보이길래 그런가 보다 하고 면접을 끝냈는데 갑자기 '깜짝 놀랐을지도 모르지만'이라고 하는 거다. 뭐야 아는 사람인가? 그 회사에 알만한 사람들이 많이 들어가긴 했겠지 근데 누구지 하고 추리하는데 그분이 화면 슬라이드를 해보래. 그랬더니 그... 그... 대학원 주임교수님이 등장. 간혹 이분을 면접에서 면접관으로 만났다는 얘기를 듣긴 했는데 내가 그걸 겅험할 줄이야. 순간 입틀막하면서 어이쿠 안 보인 게 다행이네요 라고 해버렸다. ㅋㅋ 그 분 얼굴을 보면 괜히 더 긴장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더라고. 그럴 만도 하지요.. 저도 얼굴 봤으면 그랬을 거에요..
면접 마치고 점점 자괴감이 밀려드는데, 업계 탑시드를 30년 동안 해먹고 있는 사람 앞에서 나 왜 경력자랑 했지? 차라리 그 분은 경험하지 못했을 시끄럽고 먼지 날리는 유리공장에서 심각한 사투리에 발성 발음 엉망인 고문 통역한 걸 얘기할 걸 엄청 후회했다. 이래서 사람은 항상 겸손해야 하는 겁니다. 예..

35개월-빠른 성장기

모든 것을 이사 뒤로 미뤄놓다가 드디어 이사를 하고 이것저것 급한 일들을 처리하고 엄마까지 내려가고 며칠동안 세뿅이랑 둘이서 지내야 하는 주다. 신랑은 3달 가까이 부재중.

언어치료를 받으라는 권유를 받았지만 내가 너무 바빠서 그래 이사가면 꼭 센터에 가보자 하고 있었는데 엄마가 내려가고 우리 둘만 남은 다음날부터 세뿅이가 말도 안되는 언어발전을 보이기 시작했다.
침대에서 둘이 자려고 누워서 책을 가져오라고 했더니 애매한 발음으로 '같이'라고 하는 게 아닌가. 헐! 이건 뭔가 되려나 싶어서 "같이 가요"를 가르쳐 줬더니 어렵게 발음해 내고는 내 손을 끌었다. 한 번에 여러 권을 가져오는 게 아니라 한권씩 가지고 와서 여러 번 연습을 했더니 마지막엔 꽤 괜찮게 발음할 수 있게 됐다.
어젠 목욕할 때 머리를 감기러 들어가려고 했더니 '이따, 이따'라고 하고는 손바닥을 밀면서 '가-, 가-'라고 한다. 허얼.... 이게 무슨 천지개벽이지. 몸을 닦아줄 때는 기분이 좋은지 노래를 부르는데 그때까진 허밍으로 부르던 반짝반짝 작은 별을 가사가 들리게 부르고 있어?? 
소파에서 책을 읽을 때는 자기가 아는 단어는 다 짚어가면서 얘기하고 심지어 책 내용을 외워서 페이지를 잘못 펼쳐도 거기에 처음 등장하는 의성어를 말하고 있었다... 아니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지. 기쁘고 신기해서 온 동네방네 자랑을 했는데 전화하는 중에도 하트를 만들어 보이면서 '하트-'라고 해서 할머니를 기쁘게 했다.
잘 때도 혼자 뒹굴거리면서 곰세마리를 부르고 있고(아빠곰은 뚱뚱해 엄마곰은-까지 식별 가능하게 들림) 며칠 전에 다시 가르쳐준 '안아줘요'를 혼자 연습하고. 뭔가가 되려나? 싶은 생각이 점점 강하게 들고 있다. 이 정도면 센터고 뭐고 입이 터지겠는데? 싶고. 따라하라고 말하지 않아도 내가 말하는 걸 이미 작게 따라하면서 연습한다. 
오늘부턴 저녁에 동요도 틀어놔야겠다.

새 어린이집은 오전에 운영을 안하는 체육관을 빌려서 아이들이 뛰어놀게 하는데 거기 있는 트램펄린에서 땀이 나도록 뛰고 공놀이도 해서 힘을 뺀 덕에 낮잠을 자고도 저녁에 덜 징징거리는 효과를 내고 있다. 다행히 적응은 잘하는 중이라 3일만에 낮잠을 자고 조금씩 시간을 늘리는 중. 아직 말을 잘 안하는 거 같지만 나아지겠지.
문제는 5세반까지 있던 이 어린이집에 너무 마음을 놓고 있다가 내년에 5세반 개설이 어려울 것 같다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들었다. 아직 말도 제대로 못하는 애를 유치원에 넣긴 너무 부담스럽고 일단 걸어서 갈 수 있는 다른 어린이집에 대기는 걸었는데 순번이 너무 뒤라 어쩔 수 없이 유치원은 알아보기로...했지만 이미 일반모집추첨까지 끝난 상태. 근처 유치원 3군데에 일단 전화해서 읍소하니 다들 우선모집대상이었다며 엄청나게 안타까워했단다. 흑 모르겠다. 설마 내년에 가정보육 해야되는 건 아니겠지. 아무리 그래도 영유나 놀이학교에 보낼 순 없으니 ㅠ

배변훈련은, 일단 기저귀는 미개봉 제품은 팔아치웠고 뜯어놓은 건 창고에 있는데 이것도 도무지 필요가 없어서 나눔할까 생각중. 
또 연습용 변기를 치웠더니 그렇게 거부하던 유아시트를 놓고 응가를 하는데 성공하더니 그 다음부터는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세팅해 달라고 요구한다. 혼자서 쉬하러 다녀오라고 하면 혼자 시트 올리고 서서 볼일을 보고 나서 다시 뚜껑을 닫고 물을 내리거나 쉬야에게 안녕하고 손을 흔든 후 돌아오는 식. 밤에 실수를 한 건 두번쯤 있었는데 자기가 실수한 걸 깨닫고는 굉장히 놀란 것 같았다. 그 뒤로 한참 조용해서 방수시트도 안심하고 빨아놓고 그냥 침대에서 자버린다. 

자꾸 이러니까 세뿅이가 굉장한 똑쟁이가 아닐까 의심하는 중. 말하는 게 너무 느려서 아기취급을 하고 너무 기대를 안했더니 뭔가 발전할 때마다 놀라움이 배가되는 것 같다. 

오르락 내리락 기타

당장이라도 일을 줄 것 같던 덩치 큰 프로젝트 2건이 엎어졌는지 감감 무소식. 열흘째 팽팽 놀고 있다. 불안하다.
홈트에 재미를 붙이기도 했지만 지금은 의욕 상실, 필라테스 센터 휴원 등으로 다시 대충 먹고 대충 굴러다니는 생활이다.
엄마가 오면 좀 낫지 않을까 싶긴 하지만.
시간이 빨리 가는지 느리게 가는지도 잘 모르겠고 그렇다.

이사 날짜가 정해져서 집에 있는 물건들을 팔아치우고 정리도 하고 있는데 신랑이 중국 출장을 가는 바람에 일단 올스톱.
1주일도 되지 않았는데 지겨워 죽겠다고 난리다. 2주의 격리기간을 네트워크가 불안정한 호텔에서 지내려니 죽을 맛인가 보다. 책이랑 게임기도 챙겨갔는데 책은 아껴봐야 하는 데다 게임은 원래 나 일 시켜놓고 옆에서 해야 재미있는데 혼자서 하니 재미가 덜하고 드라마를 몰아보려고 해도 인터넷이 느려 영 불편한듯.
식사가 시원치 않다고 해서 큰 트렁크 작은 트렁크에 식량을 잔뜩 넣어 갔는데 평일에 먹는 밥은 훨씬 나은 것 같다.
나도 짝꿍 없는 하루하루는 일이 없어도 약간 벅찬 느낌.

세뿅이는 며칠 전에 발달검사를 받았다. 아주 조금씩이라도 발전을 하고 있어서 이걸 받아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했는데 결과적으로 받기를 잘한 것 같다. 검사 중에도 인지능력은 괜찮다고 단순 언어지연인 것처럼 보인다고 했지만 언어쪽이 지나치게 떨어지다 보니 전체적인 발달을 지연시키고 있는 건 사실인 듯해서. 표현하는 언어가 떨어지면 수용언어도 당연히 남들보다 떨어질 수밖에 없기도 해서 아직 33개월이 채 되지 않았지만 언어치료를 해보는 것도 권할 만하다고.
이사가 2개월 남짓 남은 시점이라 센터를 다니기 시작하는 건 좀 꺼려져서 일단 남은 2개월 추이를 볼까 싶기도 하고, 21일에 주치의 얘기를 들어보고 좀 더 생각해 볼까 싶기도 하다.
단어를 다 알면서 첫 한음절만 발음하려는 건 무슨 고집인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동음이의어도 다 알고 있긴 하더라. (ex. 배: 과일, 탈 것, 신체 부위) '호'는 호랑이도 되고 호박도 되고?
지난 주엔가 비오는 날 창문 열고 손을 뻗어 비를 맞게 해줬는데 그 전후로 '비'도 확실히 아는 단어에 추가되었다.
밤에는 잠을 자려고 하지 않아서 2시간씩 책을 읽어줄 때는 한 권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줘야 할 때가 있다. 같은 걸 다시 읽어달라고 할 때는 '또'라고 얘기하라고 가르쳐 줬더니 요즘은 곧잘 한다. 책만이 아니라 뭔가를 더 하고 싶을 때 쓰는 단어라는 건 확실히 알았나 보다.
언제까지 1음절 아기로 살건지 모르곘다.

곧 32개월

지난주 청력검사가 있었다. 당연하게도 결과는 정상이었지만 과정이 너무 힘들어.
진정제를 투여하는데 몸에 힘이 빠져서 비틀거리면서도 잠들지 않으려고 울고불고 애쓰는 통에 거의 2시간 가까이 걸려 겨우 재울 수 있었다. 그것도 24개월까지 탈 수 있는 유모차에 몸을 구겨넣고 병원을 뱅뱅 돌고서야 미션을 완료. 한달에 2-3명 정도는 이런다는데 하필 그게 너냐. 
심지어 청력검사 마지막 테스트에서 일찍 깨고 말았다. 몸이 말을 안 듣는 세뿅이는 자꾸 일어서려고 했지만 몸을 꼿꼿이 세울 힘은 없고, 그래서 더 불안한지 일어서려고 하고 버둥거리고, 그러다가 아예 바닥에 누우려고 하기도 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쌩으로 애를 안고 결과를 듣고 추가결제를 하고 병원 지하에서 김밥을 사서 힘들게 택시를 잡고 앉아서야 겨우 안정을 찾았는데, 
집에 들어와서는 또 자꾸 일어서려고 하다가 비틀비틀-식탁에 쿵-으앙! 이런 반복. 밥도 안 먹길래 이건 자는 수밖에 방법이 없겠구나 싶어서 찜통더위에도 불구하고 유모차를 끌고 나갔는데 1시간을 돌아도 안자더라. 아 진짜 죽겠다 싶어서 에라 모르겠다 하고 들어와서 어찌어찌 책을 읽기 시작하니 그제서야 얌전히 누워서 뒹굴대다 잠이 들었다. 무려 3시부터 4시간 숙면을 하는 바람에 밤에 재울 때도 한참 고생했다 ㅠ

청력검사가 정상이기 때문에 남은 건 발달검사. 이건 9월 초 예정.
7월 말에 나갔던 그.. 동창회 모임에서 몇 안되는 아는 선배 옆에 앉았는데 우연찮게도 선배의 직업은 언어치료사. 해서 이것저것 물어봤는데 30개월과 36개월은 천지차이니 36개월까진 그냥 둬도 괜찮다고 하더라. 혹 검사에서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오면 꼭 연락하라고, 근처에 괜찮은 센터라도 추천해주겠다는 말에 약간 안심했다.

요즘 세뿅이의 생활은 부족한 어휘를 뉘앙스와 바디랭귀지와 짜증으로 퉁치기의 연속이다. 
밥!: 지시의 의미보다는 반찬을 먹으라고 권할 때 나는 밥을 먼저 먹겠다! 라는 주장을 의미할 때가 많음
배: 물 위를 가는 배와 신체부위 모두 인지하고 있으나 압도적으로 전자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빵: 손으로 집어먹는 말랑한 덩어리
코: 신체기관 - 더 쉬운 눈은 왜 말을 안하는지 의문
공: 물어보면 대답은 함
해: 하늘에 떠있는 크고 밝고 둥근 것. 밤에 뜨는 건 동그랗고 밝아도 달이라고 계속 얘기해 주지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세뿅이 기준으로 보름달은 달이 아님.
턱: 트럭이지만 2음절 발음이 어려우므로 줄여서 이렇게 말한다.
호: 호랑이. 처음으로 사준 인형이 수호랑이기도 했고 호랑이 나오는 동화책은 많으니까 친근하긴 했었나 보다. 애착인형인 여우 토끼도 아니고 호!를 먼저 하다니. 이건 단어라고 할 수 없지만 세뿅이는 발화 자체가 의미 있는 수준이라 기록해 본다.
엄마!, 아빠!: 부를 때도 있지만 엄마가 해라! 아빠가 먹어라! 라는 뜻일 때도 많음
두어개 정도 더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가물가물. 아직도 1음절에서 벗어나진 못하고 있다.
뭔가를 가리키면 원하는 단어로 대답을 해줘야 하는데 워낙 아는 단어가 없다 보니 도마뱀도 개구리고 그렇다.

잘하는 건, 퍼즐 정도인 걸로 보인다.
사촌형에게서 물려받은 뽀로로퍼즐을 25피스까지 쉽게 맞추길래 조금씩 피스를 늘려서 최대 64피스까지 시도해 봤는데 좀 잘하는 것 같다. 처음엔 너무 많이 해서 외운 건가 싶었는데 조각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방향을 맞추는 걸 봐서는 꼭 그렇지도 않은듯.

배변은 집안에서는 연습용 변기도 잘 쓰고 어른용 변기를 잡고 혼자 서서 쏴도 잘한다. 집에선 연습용을 치우고 유아용 시트를 올려도 될 것 같다. 하지만 어린이집에서는 쉬- 똥- 응가- 이런 류의 말을 못하기 때문에 내내 기저귀 신세. 낮잠 자고 나서나 친구들이 우르르 화장실 갈 때는 겸사겸사 변기를 쓰는 것 같지만 이 문제는 말이 터져야 해결이 될 것 같다. 휴대용변기는 처음에 별로 안좋아해서 이후에 거의 시도를 안했는데 좀 해볼까 싶기도. 
팬티를 쓰기는 좀 이르고 대신 헐렁한 바지만 입혀서 스스로 옷을 내리는 연습을 시킬까 했는데 일단 입히는 걸 싫어하더라. 이건 엄마찬스가 있을 때 해결해야 되는 일일지도.

아빠는 놀아주는 사람, 엄마는 재워주는 사람으로 인식이 굳어진 것 같다. 유모차로 산책시키면서 재울 때를 제외하면 집에선 잘 때 꼭 책을 내가 읽어줘야 되나 보다. 아빠가 있을 땐 그래도 정말 졸릴 때 나한테 책을 읽어달라고 요구하기 때문에 그렇게 많은 시간을 뺏기진 않는다. 책 읽는 소리를 들으면서 도로롱 굴러 등을 돌리기를 여러 번 반복하면 잠들 시간이 다가왔다는 신호인데 대충 눈치를 보다가 엄마는 화장실에 다녀올 테니 얌전히 누워서 기다려라, 해놓고 양치하고 세수하고 할 거 다 하고 나오면 높은 확률로 잠들어 있다. 

신체사이즈는 키는 98cm 언저리라 상위 10% 내, 몸무게는 15kg로 25% 언저리.
번쩍 안아서 화장실에 데려갈 때 거울을 보면 다리길이에 자주 놀란다. 누워 있을 때도.
과연 신인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종자개량에 성공했구나 싶기도 하고(감격)

세상에 존재하는 무수한 맛있는 것들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아이스크림이라든가..

포도를 볼 때마다 아는 척을 하기에 주말에 껍질째 먹는 포도를 사웠는데 너무 잘먹어서 이번엔 샤인머스켓을 사볼까 생각중.
놀랍게도 족발을 너무 잘먹는 어린이였다. 생각해 보면 두부나 콩류를 좋아해서(역시 콩돌이) 좀 더 어른 취향의 음식에 도전해 봐도 좋을 듯.


어쨌건 9월 검사는 얼른 지나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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