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32개월

지난주 청력검사가 있었다. 당연하게도 결과는 정상이었지만 과정이 너무 힘들어.
진정제를 투여하는데 몸에 힘이 빠져서 비틀거리면서도 잠들지 않으려고 울고불고 애쓰는 통에 거의 2시간 가까이 걸려 겨우 재울 수 있었다. 그것도 24개월까지 탈 수 있는 유모차에 몸을 구겨넣고 병원을 뱅뱅 돌고서야 미션을 완료. 한달에 2-3명 정도는 이런다는데 하필 그게 너냐. 
심지어 청력검사 마지막 테스트에서 일찍 깨고 말았다. 몸이 말을 안 듣는 세뿅이는 자꾸 일어서려고 했지만 몸을 꼿꼿이 세울 힘은 없고, 그래서 더 불안한지 일어서려고 하고 버둥거리고, 그러다가 아예 바닥에 누우려고 하기도 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쌩으로 애를 안고 결과를 듣고 추가결제를 하고 병원 지하에서 김밥을 사서 힘들게 택시를 잡고 앉아서야 겨우 안정을 찾았는데, 
집에 들어와서는 또 자꾸 일어서려고 하다가 비틀비틀-식탁에 쿵-으앙! 이런 반복. 밥도 안 먹길래 이건 자는 수밖에 방법이 없겠구나 싶어서 찜통더위에도 불구하고 유모차를 끌고 나갔는데 1시간을 돌아도 안자더라. 아 진짜 죽겠다 싶어서 에라 모르겠다 하고 들어와서 어찌어찌 책을 읽기 시작하니 그제서야 얌전히 누워서 뒹굴대다 잠이 들었다. 무려 3시부터 4시간 숙면을 하는 바람에 밤에 재울 때도 한참 고생했다 ㅠ

청력검사가 정상이기 때문에 남은 건 발달검사. 이건 9월 초 예정.
7월 말에 나갔던 그.. 동창회 모임에서 몇 안되는 아는 선배 옆에 앉았는데 우연찮게도 선배의 직업은 언어치료사. 해서 이것저것 물어봤는데 30개월과 36개월은 천지차이니 36개월까진 그냥 둬도 괜찮다고 하더라. 혹 검사에서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오면 꼭 연락하라고, 근처에 괜찮은 센터라도 추천해주겠다는 말에 약간 안심했다.

요즘 세뿅이의 생활은 부족한 어휘를 뉘앙스와 바디랭귀지와 짜증으로 퉁치기의 연속이다. 
밥!: 지시의 의미보다는 반찬을 먹으라고 권할 때 나는 밥을 먼저 먹겠다! 라는 주장을 의미할 때가 많음
배: 물 위를 가는 배와 신체부위 모두 인지하고 있으나 압도적으로 전자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빵: 손으로 집어먹는 말랑한 덩어리
코: 신체기관 - 더 쉬운 눈은 왜 말을 안하는지 의문
공: 물어보면 대답은 함
해: 하늘에 떠있는 크고 밝고 둥근 것. 밤에 뜨는 건 동그랗고 밝아도 달이라고 계속 얘기해 주지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세뿅이 기준으로 보름달은 달이 아님.
턱: 트럭이지만 2음절 발음이 어려우므로 줄여서 이렇게 말한다.
호: 호랑이. 처음으로 사준 인형이 수호랑이기도 했고 호랑이 나오는 동화책은 많으니까 친근하긴 했었나 보다. 애착인형인 여우 토끼도 아니고 호!를 먼저 하다니. 이건 단어라고 할 수 없지만 세뿅이는 발화 자체가 의미 있는 수준이라 기록해 본다.
엄마!, 아빠!: 부를 때도 있지만 엄마가 해라! 아빠가 먹어라! 라는 뜻일 때도 많음
두어개 정도 더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가물가물. 아직도 1음절에서 벗어나진 못하고 있다.
뭔가를 가리키면 원하는 단어로 대답을 해줘야 하는데 워낙 아는 단어가 없다 보니 도마뱀도 개구리고 그렇다.

잘하는 건, 퍼즐 정도인 걸로 보인다.
사촌형에게서 물려받은 뽀로로퍼즐을 25피스까지 쉽게 맞추길래 조금씩 피스를 늘려서 최대 64피스까지 시도해 봤는데 좀 잘하는 것 같다. 처음엔 너무 많이 해서 외운 건가 싶었는데 조각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방향을 맞추는 걸 봐서는 꼭 그렇지도 않은듯.

배변은 집안에서는 연습용 변기도 잘 쓰고 어른용 변기를 잡고 혼자 서서 쏴도 잘한다. 집에선 연습용을 치우고 유아용 시트를 올려도 될 것 같다. 하지만 어린이집에서는 쉬- 똥- 응가- 이런 류의 말을 못하기 때문에 내내 기저귀 신세. 낮잠 자고 나서나 친구들이 우르르 화장실 갈 때는 겸사겸사 변기를 쓰는 것 같지만 이 문제는 말이 터져야 해결이 될 것 같다. 휴대용변기는 처음에 별로 안좋아해서 이후에 거의 시도를 안했는데 좀 해볼까 싶기도. 
팬티를 쓰기는 좀 이르고 대신 헐렁한 바지만 입혀서 스스로 옷을 내리는 연습을 시킬까 했는데 일단 입히는 걸 싫어하더라. 이건 엄마찬스가 있을 때 해결해야 되는 일일지도.

아빠는 놀아주는 사람, 엄마는 재워주는 사람으로 인식이 굳어진 것 같다. 유모차로 산책시키면서 재울 때를 제외하면 집에선 잘 때 꼭 책을 내가 읽어줘야 되나 보다. 아빠가 있을 땐 그래도 정말 졸릴 때 나한테 책을 읽어달라고 요구하기 때문에 그렇게 많은 시간을 뺏기진 않는다. 책 읽는 소리를 들으면서 도로롱 굴러 등을 돌리기를 여러 번 반복하면 잠들 시간이 다가왔다는 신호인데 대충 눈치를 보다가 엄마는 화장실에 다녀올 테니 얌전히 누워서 기다려라, 해놓고 양치하고 세수하고 할 거 다 하고 나오면 높은 확률로 잠들어 있다. 

신체사이즈는 키는 98cm 언저리라 상위 10% 내, 몸무게는 15kg로 25% 언저리.
번쩍 안아서 화장실에 데려갈 때 거울을 보면 다리길이에 자주 놀란다. 누워 있을 때도.
과연 신인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종자개량에 성공했구나 싶기도 하고(감격)

세상에 존재하는 무수한 맛있는 것들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아이스크림이라든가..

포도를 볼 때마다 아는 척을 하기에 주말에 껍질째 먹는 포도를 사웠는데 너무 잘먹어서 이번엔 샤인머스켓을 사볼까 생각중.
놀랍게도 족발을 너무 잘먹는 어린이였다. 생각해 보면 두부나 콩류를 좋아해서(역시 콩돌이) 좀 더 어른 취향의 음식에 도전해 봐도 좋을 듯.


어쨌건 9월 검사는 얼른 지나갔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