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개월

이제는 개월수로 말하지 않게 된 어린이 세뿅이.
6개월 동안 폭풍성장을 거듭해 어엿한 유치원생 형아가 되었다.
여전히 애착인형인 여우를 매일 안고 등원하지만 700미터가 넘는 등원길을 걸어갈 수 있고 2번이나 등장하는 단지 내 2차선 도로에서는 이쪽저쪽 살핀 후에 안전하게 건널 수도 있다. 

새삼 느끼는 세뿅이의 특질...이라면 
1. 겁쟁이 
저 멀리에 차가 보여도 건너면 안 된다고 내 손을 붙드는데, 어제는 만두가게에서 뿜어대는 김을 보고 연기가 난다면서 가까이 가면 안 된다고 난리였다. 만두 사러 가는 데까지도 한참, 만두 찌는 동안에도 무섭다고 내 다리를 안았다가 내가 눈높이를 맞춰주니 목을 안으면서 "엄마도 고개 숙여요!" 하질 않나 소방관 아저씨가 와서 불을 꺼야 된다고 하고, 연기랑 김이랑 다른 거라고 했지만 일단 맹렬하게 김이 뿜어져 나오니 무서웠던 모양이다. 뚜껑을 열면 소리도 요란해서 귀까지 꼭 막고, 결국 그 김이 나는 길을 지나지 못해서 빙 돌아서 집에 돌아갔다. 
미용실도 무서워한다. 그래도 올해 들어서는 아빠 품에 안겨서 벌벌 떨지만 이리저리 피하려고 애쓰는 건 개선되었고 눈물이 그렁하지만 안 울거나 덜 울어서 모두가 한결 편해졌다. 며칠 전엔 조금 울고 나와서는 "세뿅이는 바보에요. 엉엉 울었어요." 하길래 울어도 도망치지 않고 끝까지 머리를 잘 잘랐으니까 용감한 거라고 칭찬해 줬다. 

2. 인정욕구
요즘 들어 "세뿅이 똘똘하지요?" 하고 확인하는 질문을 가끔 하는데 아무래도 칭찬이 꽤 힘이 되는 모양이다. 유치원에서도 자꾸 돌아다녀서 수업 분위기 흐려서 선생님이 힘들어 했다던데(그게 하필 내가 한참 바빠서 할머니가 와 계시고 난 세뿅이 깨어 있을 땐 스터디 카페로 도망가 버린 때. 식사습관이고 뭐고 다 흐트러졌었다) 칭찬요법을 썼더니 꽤 먹혔다고 하더라. 

3. 다정함
기본적으로 성격이 나를 안 닮은 듯. 천만다행이다. 뭘 먹을 때는 항상 집안에 있는 사람 모두를 챙긴다. 8개밖에 안 들어있는 하리보젤리를 먹어도 엄마 하나 아빠 하나 할머니 하나까지 챙기고 잠들기 전에 우유를 먹을 때도 안 먹으면 품고 있으라면서 꼭 하나씩 갖다준다. 
길을 가다 만나는 모든 것에 참견을 하고 온갖 동물한테 인사한다. 낯은 가리는 편이지만 그래도 마트나 반찬가게에서는 인사를 잘한다. 기준을 모르겠네? 
가끔 갑자기 사랑이 차오르는지 안아주고 뽀뽀하고 하트 날리고 사랑한다고 할 때가 있다. 어제 저녁에는 갑자기 행복하다고 해서 깜짝 놀랐는데, 과연 이 아이는 행복하다는 단어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는 걸까. 
어쨌거나 정서가 안정되어 있고 긍정적이라는 느낌은 확실히 들어서 만족스럽다.

4. 말을 어떻게 참았지
거의 매일 처음 듣는 단어를 말하고 이제는 존댓말도 꽤 일상적으로 구사해서 인간의 학습능력에 감탄하게 된다. 세뿅이가 말을 시작한 게 작년 12월인데 불과 6개월만에 이만한 발전이 가능하다니, 아무래도 그동안 말을 못한 게 아니었다는 게 점점 확증으로 굳어진다.
발음이 아직 부정확해서 나만 알아들을 수 있는 말도 많고 하고 싶은 표현이 한 번에 완성되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기다려 주고 세뿅이가 한 말을 그대로 되돌려주면 다시 학습이 되는 효과도 있는 것 같아서 나도 열심히 말하고 있다. 
아 그래? 그렇구나 하는 말을 많이 하다 보니 세뿅이도 그렇게 리액션이 굳어졌는데 이거 나중에 영혼 없다고 욕 먹는 거 아니겠지.

5. 아빠만큼 커질래
영유아검진 결과 키는 상위 15% 안쪽이던데 아빠처럼 크고싶은지 자주 그런 말을 한다.
얼굴은 나랑 똑 닮았는데 나도 외탁한 편이라 그쪽이면 키도 작지 않을 거 같고 키까지 아빠를 닮으면... 제발 190만 넘지 말아라


기타 육아의 고충..은 사실 별로 없다.
유치원을 다니게 되면서 낮잠을 안 자니까 밤수면시간이 그만큼 빨라져서 요즘은 9시~10시 사이에 쉽게 잠든다. 예전엔 안 자려고 애쓰다가 책을 읽어주면 들으면서 스르륵 눈을 감곤 했는데 요즘 졸리면 책 하나 다 읽고 "이제 잘래요" 하고 도로롱 굴러서 알아서 쌔근쌔근모드로 들어가니 이렇게 편할 수가 없다.
말이 어느 정도 되니까 짜증이 확 줄어서 귀여움이 맥스를 찍는데 지금이 세뿅이의 리즈시절이라는 생각이 강력히 든다. 이때 많이 놀아주고 할아버지 할머니 보여드리고 사진도 많이 찍어놔야지.

덧글

  • 나녹 2021/06/07 22:17 #

    말 제대로 터졌네요 ㅎㅎ 일찍 자는 것만큼 고마운 게 없는데 그것도 참 잘 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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